배우 박지아 야구가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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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슨코리아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62%가 야구를 가장 좋아하는 종목으로 꼽았다. 800만 관중 시대를 활짝 연 프로야구는 여러 악재 속에서도 여전히 최고 인기 종목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로야구 인기에 발맞춰 사회인 야구 열기도 뜨겁다. 특히 야구대회가 따로 열릴 만큼 연예인들의 사회인 야구 참여도 활발하다. 배우 박지아(25)는 단순히 사회인 야구단 참여를 넘어 정식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박지아는 “촬영장에서는 ‘배우 박지아’지만 야구장에서는 ‘야구선수 박지아’로 봐줬으면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스트 서울 여자야구팀에서 활동 중인 박지아는 최근 여자야구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돼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주말마다 화성여자야구장에서 땀을 흘린다. 지난 4월 상비군에 뽑힌 박지아는 29명의 동료와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종 20명 안에 들어야 비로소 국가대표가 돼 8월 아시아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박지아는 최근 개봉한 영화 악녀에 출연하는 등 액션배우와 야구 선수 생활을 병행한다. ‘투잡’을 뛰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야구에 쏟는다. 박지아는 “배역이 들어와도 야구를 너무 좋아해 촬영을 안 간 적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재작년에는 소속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며 “요즘은 촬영이 매일 있지 않기 때문에 평소 야구 연습을 하거나 야구를 가르친다”고 야구 애정을 드러냈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지아는 일곱 살 때 운명처럼 야구를 접했다. 부모님을 따라 대구시민운동장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보러 갔는데 외야에 앉아있던 박지아는 이승엽의 홈런공을 주웠다. 박지아는 “야구공을 주웠는데 그때 일이 어린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그 뒤로 오빠들이랑 동네에서 야구를 했다”며 “그런데 초등학생때 야구공에 맞아 코피를 심하게 흘린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야구 장비가 다 없어졌다. 부모님이 제가 야구 경기를 하는 걸 못마땅해 했고 갑자기 발레 학원을 끊어주셨다”고 추억 보따리를 풀었다.


이후 태권도와 합기도 등 무도를 익히는데 전념하던 박지아는 22세에 서울액션스쿨에 들어갔다. 합기도를 오래 한 덕에 다니던 도장 관장 제의로 입학한 뒤 2년 과정을 수료했다. 액션스쿨을 다니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야구가 맴돌았다. 박지아는 “팬으로서 야구를 계속 보고 있었지만 직접 마운드에 서서 던지고 싶은 열망이 더 솟았다”며 “성인이 됐으니 야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서울에서 전문 코치들을 찾아다니며 야구를 배웠다”고 밝혔다.

배우 활동을 하면서 훈련을 하고 경기에 뛰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 관리뿐 아니라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그를 힘들게 했다. 박지아는 “처음에는 ‘배우가 야구를 얼마나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저를 봤다”며 “물론 처음에는 실력이 모자랐다. 그래서 선입견을 깨트리기 위해서 실력으로 보여줘야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었다”고 털어놨다.

박지아는 경기에 대부분 투수로 나선다. 그는 “마운드에서 던질 때 삼진아웃을 잡으면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변화구를 배웠는데 공을 던져 타자를 속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야구의 매력을 설명했다.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박지아가 품은 꿈은 국가대표다. 그는 지난해 부산 기장에서 열린 여자야구월드컵에서는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다. 당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번엔 상비군에 뽑혀 최종 대표팀에 선발되려고 더 기량을 갈고 닦았다. 박지아는 “처음 상비군에 뽑혔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서 ‘지아야 수고했어’라고 자축했다”며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선수가 되려고 책임감을 갖고 훈련했다. 포심 패스트볼뿐 아니라 투심, 커브, 싱커까지 다양한 구종을 연마했다”고 소개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박지아는 여자야구 홍보대사도 맡았다. 실력이 부족한데 야구로 뜨려고 한다는 오해 때문에 잘 나서지 않으려했다가 열악한 여자야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시구를 하는 등 현장을 누비고 있다. 박지아는 “여자야구연맹이 올해 창립 10주년이다. 여자야구도 10살 된 어린아이라고 보면 된다”며 “아직 그만큼 클 기회가 많이 남았다. 대회때만 반짝이 아니라 평소에도 야구팬들이 여자야구에 많이 관심 가지고 응원하고 후원해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레슨은 가장 기본적인 공을 받고, 던지고, 치는 자세 테스트로 시작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코치님은 “거의 기본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 달간은 기본기를 다지는 방향으로 레슨을 진행하겠다”라며 센터의 훈련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니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올 것을 당부했다.

당장 포수로 나서기 위해서는 캐칭, 블로킹, 프레이밍 등 포수 훈련에 집중해야겠지만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우선 기본기를 재정립하고 차근차근 포지션 소화 능력을 키워나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지난해 이맘때 한 달이라도 바짝 레슨을 받았더라면 ‘그동안 당했던 부상 중의 일부는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고대로 레슨장의 훈련량은 무시무시했다. 코치님의 전담마크로 포구 자세 교정에 들어갔다. 최대한 낮은 자세를 만드는 것부터 글러브의 위치와 각도, (우투의 경우)오른손의 위치, 포구 후 글러브 이동 등의 과정을 하나의 완성된 동작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스펀지처럼 흡수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체력이라도 받쳐주면 좋으련만 공 10개만 받아도 후들거리는 다리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타격은 스윙 메커니즘 자체를 아예 통째로 바꾸고 있다. 참 일관성 있게도 타격에서도 높은 자세가 문제다. 타격 자세는 최대한 중심을 낮게 잡고 상체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그리고 타격 시 오른팔을 이용하기보다 왼팔로 스윙하며 타구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줄 수 있게 교정했다. 팔꿈치 상태가 완전치 않아 던지는 것에 대한 훈련은 미뤄둔 상태다. 튜빙 밴드를 이용해 보강 운동을 하며 전완근을 키우고 있다.

얼마간의 레슨으로 나의 실력에 기적과 같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그저 넘치는 의욕만 가지고 좌충우돌하던 예전의 나에서 야구 자체를 즐기는 나로 가는 과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출처 : 세계일보 최형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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