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류현진이 같은 마운드에 오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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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이하 한국 시각)에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체이스 필드에서 열린 경기는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시즌 첫 선발 등판 경기였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창단 20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던 날, 또 다른 한국인 선수가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는 디백스의 홈 개막전은 아니었다. 디백스는 개막 일정부터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홈 경기를 치렀으며, 아직 원정 경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구단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기념 행사가 이날 열렸고, 이에 따라 디백스 구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한국인 투수 김병현을 초대한 것이었다.

디백스가 시즌 개막전에 기념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일정을 조율하면서 이날 경기에서 기념 행사를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인 투수 류현진이 상대 팀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되면서 이날 경기에 더 관심이 쏠렸다.

디백스의 2001 월드 챔피언 주역이었던 핵잠수함 김병현

디백스는 1998년 리그 확대와 더불어 메이저리그에 참가했다. 당시 아메리칸리그에서는 탬파베이 데블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가 창단되었고 내셔널리그에서는 디백스가 창단되었는데, 리그의 팀을 짝수로 맞추는 과정에서 밀워키 브루어스가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옮기게 됐다. 현재는 2013년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내셔널리그가 아메리칸리그로 옮기면서 다시 리그 각 15팀이 되어 인터리그가 매일 열리는 상태다.

물론 디백스도 창단 첫 해인 1998년에는 꼴찌를 기록했다. 새로운 팀이라 에이스도 없었고 중심축을 잡아주는 선수도 없었고 경험 미숙 등이 동반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백스는 첫 해부터 체이스 필드에서 열렸던 81번의 홈 경기가 모두 매진되는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애리조나 주에서 여름 스포츠 종목이 야구가 처음이었고, 최초의 팀이 디백스였기 때문이다.

이후 디백스는 랜디 존슨, 루이스 곤잘레스 등을 영입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마침 존슨의 집이 피닉스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후 김병현이 데뷔하여 구원투수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면서 디백스는 순식간에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팀이 됐다.

2년차인 1999년 100승을 달성하면서 꼴찌 팀에서 순식간에 최상위권 팀으로 올라간 디백스는 이후 커트 실링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정상에 도전했다. 그리고 2001년 디백스는 존슨과 실링의 원투 펀치가 드디어 빛을 발하고 김병현이 마무리투수로 고정되면서 황금 시대를 열었다.

당시 배리 본즈가 시즌 73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2경기 차로 제치고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던 디백스는 존슨과 실링 원투 펀치의 힘으로 라운드를 승리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5차전 혈투 끝에 간신히 꺾었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존슨과 실링의 완투 그리고 김병현의 2세이브를 포함하여 4승 1패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 상대는 악의 제국이라 불리었던 디펜딩 챔피언 뉴욕 양키스(당시 1998-2000 3년 연속 우승)였다. 존슨과 실링, 로저 클레멘스, 앤디 페티트 그리고 마이크 무시나까지 당시 이름을 날리던 베테랑 투수들이 총출동한 시리즈였고, 실링이 1차전, 존슨이 2차전 그리고 클레멘스가 3차전을 책임졌던 시리즈였다.

시리즈 전적 2승 1패가 된 상황에서 4차전과 5차전 김병현이 양키 스타디움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병현은 티노 마르티네스와 데릭 지터(현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 사장), 스캇 브로셔스 등에게 홈런을 허용하며 2경기 연속 블론세이브로 위기에 몰렸다. 다시 체이스 필드로 돌아온 디백스는 6차전 존슨의 역투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운명의 7차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디백스와 양키스는 총력전을 펼쳤다. 마운드에서는 실링과 클레멘스가 총력전을 펼쳤고, 1점 차로 뒤지던 디백스는 실링에 이어 다른 선발투수들을 포함하여 전날 등판했던 존슨까지 마운드에 올렸다. 9회말 양키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충격적인 송구 실책으로 블론세이브를 허용했고, 뒤이어 곤잘레스의 끝내기 안타가 나왔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체이스 필드, 추억 회상한 김병현

인터뷰하는 류현진 류현진(31·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방문경기를 마치고 인터뷰에서 자신의 투구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2018.4.3

▲ 인터뷰하는 류현진류현진(31·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방문경기를 마치고 인터뷰에서 자신의 투구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2018.4.3ⓒ 연합뉴스

이후 김병현은 2002년 다시 마무리투수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나 이후 선발 전환을 시도했고, 2003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2005년 콜로라도 로키스로 팀을 다시 옮겼다. 하지만 2003년 프레스턴 윌슨의 부러진 방망이에 발목을 맞고 부상을 당한 이후 후속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투구 밸런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병현은 2년 동안 로키스에서 뛰면서 풀 타임 선발투수로 나름 한 자리를 차지하며 활약을 펼쳤고, 김선우(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2007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다시 선발 기회를 얻은 김병현은 중간에 디백스로 웨이버 트레이드되었다 돌아오는 등 파란만장한 시즌을 보낸 끝에 유일한 선발 10승 시즌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7년의 이 성적은 선발로 10승을 기록했지만 6점 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투구 내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당시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던 디백스가 8월에 웨이버 클레임으로 김병현을 데려왔지만, 김병현은 선발로 등판한 2경기에서 충격적인 부진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다시 웨이버로 공시되어 말린스로 돌아가기도 했다.

결국 김병현은 이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 그리고 일본을 거쳐 김병현은 2012년부터 KBO리그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채 2017년을 끝으로 1군 기록이 없었다. 광주제일고등학교 선후배인 서재응(KIA 타이거즈 투수코치)과 최희섭(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동반 은퇴식을 치렀지만 김병현은 보이지 않았는데, 은퇴식만 치르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은퇴로 보고 있다.

김병현의 임팩트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디백스의 팬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뽑히기도 했으며, 창단 20주년 팬 투표에서도 역대 최고의 멤버 12위에 올랐을 정도다(마무리투수 중 1위). 2011년 월드 챔피언 10주년 행사에는 당시 일본에 있어서 가지 못했지만, 김병현이 창단 20주년 행사에 초대 받은 이유도 이렇듯 강렬한 인상이 팬들에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김병현은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너무 어려서 다 누리지 못했으나 다시 와 보니 어렸을 때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또한 아직도 야구가 그립다고 하면서 미련을 보였고, 이 때문에 야구 클리닉도 생각하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현역 복귀는 생각만 하고 있다는 농담도 남겼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병현은 야구인이 오면 공짜로 대접하겠다는 홍보를 남기기도 했다. 경기 전 시구에서는 자신이 원래 던졌던 언더핸드 자세가 아닌 오버핸드 자세로 공을 던졌다. 비록 선수 시절의 폼이 아니었지만, 디백스 팬들은 월드 챔피언에 공헌했던 김병현의 시구에 큰 박수를 보냈다.

김병현 시구 이후 다소 아쉬웠던 류현진 선발경기

김병현의 시구로 시작된 경기에서 1회말 다저스는 류현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다저스 타선이 1회부터 작 피더슨과 코리 시거의 연속 안타, 야스마니 그랜달의 홈런 등으로 점수를 먼저 올린 상태에서 여유를 갖고 올라온 마운드였다(3-0). 류현진도 데이비드 페랄타와 케텔 마르테 2명을 연속 땅볼 처리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3번타자 폴 골드슈미트를 만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류현진의 천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골드슈미트에게 2루타를 허용한 뒤, 4번타자 A. J. 폴락의 후속타가 터지면서 실점한 것이다(3-1). 크리스 오윙스를 삼진 처리하면서 다행히 추가 실점은 없었다.

류현진은 2회말 선두 타자 제이크 램에게 하마터면 안타를 맞을 뻔했지만 수비 시프트가 돋보였다. 3루수 로건 포사이드가 2루수 위치로 이동하여 타구를 처리했기 때문에 3루수 앞 땅볼로 기록되었고, 류현진이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 아웃 처리했다.

류현진은 3회부터 투구수가 급격히 많아졌다. 마르테에게 3루타를 허용한 것은 체이스 필드가 외야 구조 때문에 워낙에 3루타가 잘 나오는 구장(류현진의 3안타 경기도 체이스 필드에서 나왔음)이라고 쳐도, 그 이후가 좋지 않았다. 마르테에게 3루타를 허용한 이후 흔들린 류현진은 골드슈미트와 오윙스 그리고 램을 상대로 3타자 연속 볼넷을 내 주면서 실점한 것이다(3-2).

류현진은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단 한 번만 허용하고 있었다. 어깨 부상에서 복귀한 뒤 지난 해 6월 한 번이었는데, 이번 경기에서 램을 상대로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밀어내기 볼넷은 스트라이크가 하나도 없었던 스트레이트 볼넷이었다.

4회에도 류현진은 볼넷 때문에 투구수가 많아졌다. 알렉스 아빌라에게 볼넷을 허용한 류현진은 투수 타이후안 워커를 병살 처리하면서 이닝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데이비드 페랄타의 안타와 마르테의 3루타가 나오면서 추가 실점했고(3-3), 결국 3.2이닝 5피안타 5볼넷 2탈삼진 3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75구).

체이스 필드는 쿠어스 필드(콜로라도 로키스 홈 구장)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2번째로 휴미더(공 습도 조절기)를 도입할 정도로 투수들에게 불리하고 타자들에게 유리한 경기장이었다. 류현진은 이 날 경기에서 지난 해 급격히 늘어났던 피홈런은 없었지만, 3루타를 2번이나 허용했을 정도로 고전했다.

하지만 류현진이 이 날 가장 고전한 이유는 밀어내기를 포함한 5개의 볼넷 때문이었다. 다른 이닝은 투구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볼넷만 3개가 연속으로 나왔던 3회에만 투구수가 30구였고, 1회와 3회 그리고 4회에 실점하면서 더 이상 투구를 이어가지 못했다.

류현진의 5볼넷 이상 경기는 201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처음 있었다. 이 날 처음으로 5볼넷을 기록했던 류현진은 결국 이전까지 이어가고 있던 6이닝 이상 경기 연속 기록이 중단되기도 했다(당시 마지막 등판 제외하고 모두 5이닝 이상). 이렇듯 안타를 많이 맞는 것보다 볼넷을 많이 허용하는 것이 투수의 투구에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류현진의 다른 5볼넷 이상 경기 역시 타선이 강한 팀들을 상대로 한 경기였다. 어깨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지난 해 5월 로키스를 상대로 4이닝 6볼넷 경기가 있었으며, 지난 해 9월 디백스를 상대로 6이닝을 던지기는 했지만 역시 5볼넷 경기가 있었다. 이후 타구에 맞는 등 각종 불운이 겹치며 류현진은 결국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했다.

류현진에 이어 잰슨까지… 볼넷으로 인한 부진

류현진의 뒤를 이어 등판한 페드로 바에즈가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류현진의 추가 실점은 없었고, 동점 상황이었기 때문에 승패와도 관계가 없었다. 이후 다저스가 6회부터 8회까지 1점 씩을 추가하면서 3점을 앞섰고, 다저스는 일단 승리를 굳히는 듯 했다(6-3).

그러나 9회말에 등판했던 마무리투수 켄리 잰슨도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볼넷 때문에 경기를 망쳤다. 페랄타와 마르테를 연속 땅볼로 처리하며 2아웃을 잡은 잰슨은 골드슈미트와 폴락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며 2사 1,2루 실점 위기에 몰렸다.

1회에 류현진은 골드슈미트와 폴락에게 연속으로 안타를 맞으며 실점했으나 오윙스를 삼진으로 잡고 추가 실점을 막았다. 하지만 잰슨은 오윙스와의 대결에서 비거리 131m 짜리 대형 홈런을 허용하면서 충격적인 블론세이브를 범하고 말았다(6-6). 다음 타자 램을 1구 만에 중견수 뜬공으로 잡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다 잡은 경기는 기나긴 연장 승부로 돌입하게 됐다.

이 날 시구를 했던 김병현이 2001년 월드 시리즈 4차전과 5차전에서 블론세이브 이후 두 경기 모두 연장전을 갔던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디백스 역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김병현이 시구한 이 날, 다저스 역대 최고의 마무리 잰슨도 홈런으로 블론세이브를 허용했다.

그리고 시작된 연장전은 기약 없이 피닉스 현지 시각으로 자정을 넘겼고, 5시간이 훨씬 넘어간 경기는 연장 15회가 되어서야 다시 승부가 갈렸다. 15회초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가 내야 안타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로 나선 투수 윌머 폰트가 희생 번트를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체이스 어틀리가 깔끔하게 타구를 밀어 친 사이 2루에 있던 벨린저가 홈을 밟았다(7-6).

경기 시간이 5시간 30분을 넘기면서 두 팀 모두 불펜에 있는 구원투수들을 거의 다 소진했고, 이 때문에 다저스는 14회에 던졌던 폰트가 그대로 타석에 나와서 번트를 댔던 것이다. 그리고 다저스는 15회말 폰트가 그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지친 폰트는 2번째 타자 램을 상대로 9구 접전 끝에 안타를 허용했고, 닉 아메드에게 2루타를 허용하면서 또 동점을 허용했다(7-7). 아빌라를 자동 고의4구로 거른 폰트는 대타 제프 매티스를 상대했다. 그리고 2구 째 역전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면서 거짓말 같은 역전패를 당했다(7-8).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김병현은 류현진이 잘 던지지만 승리는 디백스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는데, 류현진이 다소 부진했지만 실제로 디백스가 승리하는 일이 발생했다.

디백스 창단 20주년 기념 행사에 역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이름을 남긴 한국인 투수 김병현이 시구를 했고, 그 경기에 한국인 투수 류현진이 선발로 등판했다. 그리고 다저스 역대 최고의 마무리투수 잰슨이 김병현과 마찬가지로 홈런으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공교롭게 류현진과 잰슨은 둘 다 볼넷으로 실점이 늘어나면서 경기가 장기전이 됐다. 이번 시즌 최장시간 경기로 기록된 역사적인 경기가 되었지만, 류현진과 잰슨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경기가 될 수도 있다. 볼넷이 경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두 선수가 뼈저리게 느낀 하루가 되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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