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의 뜨거운 예술 피겨 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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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를 신고 온몸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스포츠, 피겨 스케이팅. 이정수 피겨 스케이팅 종목담당관이 그 매력 속으로 친절히 안내한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한국인에게 피겨 스케이트와 김연아는 동의어나 다름없다. 더블 악셀(Double Axel), 트리플 토 룹(Triple Toe Loop) 같은 생소한 피겨 용어를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하듯이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 김연아가 굵직한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따면서부터였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피겨 퀸’이란 말이 자연스럽지만 피겨 스케이팅은 1900년대까지도 남자 선수의 전유물이었다. 당시엔 매우 기계적이고 정확한 동작을 요구하는 스포츠였다고. 현재 우리가 즐기는 피겨 스케이팅의 토대를 만든 이는 발레리노 출신의 잭슨 하인즈(Jackson Haines). ‘현대 피겨 스케이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수다. 기억해 둘 선수가 더 있다. ‘악셀’은 스웨덴의 액셀 파울젠(Axel Paulsen) 선수의 1회전 반 점프에서 따온 것이다. ‘러츠’도 이 점프를 처음 만든 선수의 이름, 알로이즈 러츠(Alois Lutz)에서 유래했다.

여자 피겨 스케이팅 역사의 시작은 마지 시어스(Magde Syers) 선수였다. 1902년, 남자 선수들과 겨뤄 여성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1906년, 처음으로 공식적인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 여자 싱글 종목이 생겼다. 1908년 런던 올림픽부터 남녀 종목이 분리됐으며, 1924년 동계올림픽이 창설되며 대표적인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는 대한제국 시기인 1890년대 중반, 서구식 스케이트가 처음 등장했다. 꽁꽁 얼어붙은 경복궁 향원정에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외국 선수의 시범 경기를 관람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를 ‘빙족희’(氷足戱)로 불렀다고 한다. 풀이하면 ‘얼음 신발 놀이’ 정도가 되겠다. 한국에서 피겨 스케이팅이 정식 종목이 된 것은 1955년 전국빙상선수권대회부터다.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때 처음으로 한국 선수가 국제 대회에 진출했다. 이후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총점 228.56점으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기 방식

쇼트 프로그램/댄스 : 제한 시간 안에 정해진 기술 요소를 연기하는 종목.
프리 스케이팅/댄스 : 세부 종목별 정해진 시간 내에 자유롭게 연기하는 종목.

싱글(개인 경기)
– 선수 30명이 쇼트 프로그램 수행 후, 점수에 따라 24위까지 프리 스케이팅에 진출.
– 합산 점수로 최종 순위 결정.
– 남자 : 쇼트 프로그램(2분 40초±10초) & 프리 스케이팅(4분 30초±10초)
– 여자 : 쇼트 프로그램(2분 40초±10초) & 프리 스케이팅(4분±10초)

페어(남녀 혼성팀)
– 20팀이 쇼트 프로그램 수행 후 점수에 따라 16팀이 프리 스케이팅 진출.
– 합산 점수로 최종 순위 결정.
–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들어올리는 리프트(Lift),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공중에 던지고, 여자 선수가 회전 후 착지하는 쓰로우 점프(Throw Jump) 등 페어 특유의 기술이 있다.
– 쇼트 프로그램(2분 40초±10초) & 프리 스케이팅(4분 30초±10초)

아이스 댄스(남녀 혼성팀)
– 20팀이 쇼트 프로그램 수행 후 점수에 따라 16팀이 프리 스케이팅 진출.
– 합산 점수로 최종 순위 결정.
– 페어와 달리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들어올릴 때 남자의 팔이 머리 위로 3초 이상 있으면 안됨.
– 연기하는 동안 남녀 선수가 양팔 길이 이상으로 5초 이상 떨어지면 감점.
– 쇼트 댄스(2분 50초±10초) & 프리 댄스(4분±10초)

팀이벤트(단체전)
– 개별 종목 경기 이전에 10개국이 팀으로 참가하는 종목.
–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 댄스 각 4개 세부 종목에 나라별로 참가하여 종합 점수로 순위를 산정.
– 쇼트 프로그램 이후 상위 5개 팀만 프리 스케이팅에 진출, 최종 순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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