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국기원을 점거하라”고 선동한 이유는?
“태권도인들 다 죽일 겁니까, 그런 몇 놈들 때문에?”
“안 되면 가서 (팔이라도) 비틀어요. 태권도는 그럴 때 써야 되는 거예요.”
“몰려가서 한 달 정도 국기원을 점령하세요.”지난달 2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단상에 선 국회의원이 거친 말을 쏟아냈다. 주인공은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태권도 9단 출신인 이 의원은 방청석에 앉은 태권도인들을 향해 “국기원을 점령하라”는 선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과연 무슨 사연일까?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을 점령하라!

이날 행사는 ‘태권도 국기 지정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태권도진흥재단, 대한태권도협회 등 유관 단체들 주최로 전문가들이 ‘태권도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동 주최 기관인 국기원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태권도는 지난해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한민국의 국기로 지정됐다. 이 때문인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 현역 의원들 여럿이 행사장을 찾았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모습도 보였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태권도 국기 지정’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동섭 의원이 축사에 나섰다. 정작 이 의원은 행사장을 찾은 태권도 9단 원로 등 태권도인들을 성토했다. 국기원 정상화에 저항하는 국기원 이사들을 왜 지켜만 보느냐는 불만이다.

이 의원은 “이번에 국기원 개혁 안 하면 태권도 망해요. (이사회) 몇 사람들이 (국기원) 주물럭거리는 걸 가만 놔두면 되겠습니까. 뭐가 겁이 납니까? 9단 선배님들부터 나서서 국기원 점령하고 강하게 의견 전달하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동식 국기원 이사

나동식 국기원 이사

이동섭 의원이 겨냥한 표적은 ‘개혁 반대’ 국기원 이사회

현역 국회의원이 성토할 정도로 국기원은 최근 표류하고 있다. 여론에 떠밀려 시작된 국기원 개혁 작업에 계속 시간 끌기로 버티고 있는 일부 국기원 이사들 때문이다.

국기원은 지난달 21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했다. 국기원 개혁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의결하는 자리였다. 정작, 이사회는 정관 개정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당연직 이사로 새롭게 합류한 나동식 이사(충남태권도협회장)가 정관 개정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기원 정관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 이사의 주장이다. 당연직 이사 대리로 참석한 김성은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유산과장이 “예정대로 새 정관안 개정을 의결하자”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기원은 지난해 9월부터 자체적인 개혁 작업을 시작했다. 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정관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정관 개정 승인을 반려했다. 소수 이사들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 정관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다.

국기원 이사회는 지난 3월 공청회를 열고 태권도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관 개정안을 수정했다. 그리고 임시 이사회에서 의결하기로 했지만, 일부 소수 이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된 것이다.

나 이사의 강력한 반발에 홍성천 국기원 이사장도 “발전위원회를 해체하고, 정관 개정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관 개정을 위한 기존 조직을 해체하고 또 다른 조직을 새로 만들자는 것이니 결국 시간 끌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동영상영역 시작

김철오 국기원 이사

동영상영역 끝

동영상설명김철오 국기원 이사

문체부가 개선 권고했지만…’겸직’으로 제 배 채우는 국기원 이사들

국기원 이사회가 김철오 이사에게 국기원 연수원장 직무대행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도 논란이다. 국기원 정관을 보면 연수원장은 개방직 공모로 선출돼야 한다. 직무대행은 직제상 다음 순위자인 연수처장이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더군다나 인사권을 행사할 원장은 현재 공석이다. 오현득 전 원장이 지난해 채용비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이사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원장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이사회가 행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기원 이사는 명예직이며 비상근이기 때문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상근 임원에 대한 겸직 금지나 보수, 활동비 지급 방식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다.

하지만 국기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비상근 이사 5명에게 보수 성격의 활동비와 임금을 지급했다. 국기원 명소화사업 추진위원장, 시범단 부단장, 연수원 수석강사, 기술심의회 의장, 문화산업위원장 등을 겸직했다는 이유다. 비상근 이사들에게 월 120만 원에서 400만 원까지 지급했다.

문체부는 지난 1월 국기원 사무와 국고 보조금 검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을 비웃듯 이사회는 김철오 이사에게 또다시 겸직을 허용한 것이다.

김영태 이사는 현재 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김영태 이사는 상근인 원장 직무대행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 김철오 이사 역시 상근직인 연수원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면 월 급여를 받는다. 사실상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